커리어
엔터 회사는 신입 기획자에게 무엇을 묻는가
엔터테인먼트 기획 공고 1,590건을 읽었다. 신입에게 열린 자리는 생각보다 많았고, 그 자리가 요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가고 싶다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흐려진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고 공연을 자주 보고 콘텐츠를 많이 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회사가 사람을 뽑지는 않는다. 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묻는지는 채용공고에 적혀 있다.
그래서 공고를 직접 세어 봤다. 2026년 9월 29일 기준으로 사람인·잡코리아·원티드와 회사 자체 채용 사이트에 올라 있던 엔터테인먼트 업계 공고 3,488건 가운데, 직무명이나 공고명에 기획·콘텐츠·공연·행사·A&R·팬 같은 말이 들어간 공고는 1,590건이었다. 이 글은 그 공고들을 읽고 회사가 신입 기획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리한 것이다.
공고는 회사가 쓴 질문지다. 무엇을 준비할지는 그 질문을 읽는 데서 시작한다.
신입에게 닫힌 문이 아니다
먼저 문의 크기부터 보자. 기획 계열 공고 1,590건 중 '신입'이나 '경력무관'으로 열린 공고는 853건이었다. 절반이 넘는다. 엔터 업계는 경력자만 뽑는다는 인상과 달리, 기획 계열의 절반 이상은 신입에게도 열려 있다.
학력의 문턱도 생각보다 낮다. 신입이 지원할 수 있는 853건 가운데 약 3분의 2가 학력무관이었다. 특정 전공을 요구하는 공고는 드물었다. 전공이 없어서 지원조차 못 한다고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턱은 어디에 있는가. 학위와 전공이 아니라면 회사는 무엇으로 사람을 거르는가. 자격요건과 우대사항에 적힌 말들 안에 답이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협업'이었다
신입 지원이 가능한 853건의 자격요건·우대사항·주요업무를 읽고 자주 나오는 말을 세어 봤다. 정확한 통계라기보다 공고의 문장에서 키워드를 찾은 어림값이다. 그래도 흐름은 뚜렷했다.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이었다. 약 42%의 공고가 이를 언급했다. 그다음이 SNS와 콘텐츠 트렌드에 대한 이해(약 33%), 엔터테인먼트나 팬덤에 대한 이해(약 24%), 문서 작성과 기획서·제안서 역량(약 23%) 순이었다. 외국어(약 18%)와 데이터 분석(약 17%)이 뒤를 이었다.
이 순서는 기획이라는 일의 생김새를 그대로 보여 준다. 기획자는 혼자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아티스트, 제작, 마케팅, 현장 운영 사이를 잇는 사람이다. 그래서 회사는 다른 사람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트렌드와 팬덤에 대한 이해는 그 그림의 재료이고 문서 역량은 그것을 남에게 건네는 방법이다.
회사가 신입 기획자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남과 함께 굴릴 수 있느냐다.
의외의 단어들
몇몇 단어는 예상 밖이었다. 운전 가능 여부가 약 18%의 공고에 적혀 있었다. 공연과 행사, 아티스트 일정은 사무실 밖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획이 책상 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고가 먼저 말해 주는 셈이다.
반대로 포트폴리오를 명시한 공고는 약 13%에 그쳤다. 그렇다고 포트폴리오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공고에 적지 않았을 뿐, 서류와 면접에서 회사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 사람이 실제로 생각하고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다. 협업과 트렌드 이해와 문서 역량을 말로만 주장하지 않고 보여 줄 방법이 포트폴리오다.
AI 활용을 언급한 공고는 아직 약 7%였다. 적은 숫자지만 새로 생긴 요구라서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 이 역량을 갖춘 신입은 공고가 그 말을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앞서 있게 된다.
공고를 준비의 목록으로 바꾸는 법
공고에서 읽은 것을 준비로 옮기면 이렇다.
첫째, 협업의 경험을 하나 만들어 둔다. 동아리든 스터디든 작은 프로젝트든 상관없다. '내가 무엇을 맡았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의견을 맞췄는가'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트렌드를 소비만 하지 말고 기록한다. 이번 달 화제가 된 콘텐츠 하나를 골라 왜 반응이 있었는지 한 쪽으로 정리해 두는 습관은 면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재료가 된다.
셋째, 기획서 한 장을 끝까지 써 본다. 문제 정의에서 시작해 대상, 해법, 실행 방법까지 이어지는 한 장짜리 문서다. 문서 역량은 써 본 만큼 는다.
넷째, 데이터와 AI 도구 중 하나는 손에 익힌다. 엑셀로 반응 수치를 정리해 보는 것도, 생성형 AI로 기획의 초안을 빠르게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공고 다섯 개 중 하나가 묻는 역량이고, 점점 더 많이 물을 역량이다.
결국 회사가 보고 싶은 것
공고 1,590건을 읽고 남는 결론은 단순하다. 회사는 신입에게 완성된 경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 업계를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을 문서로 옮길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것을 말이 아닌 증거로 보고 싶어 한다.
엔터 회사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 마음을 공고가 묻는 언어로 바꾸는 순간 준비는 막연한 바람에서 구체적인 목록이 된다.
조사 기준: 2026년 9월 29일 사람인·잡코리아·원티드·회사 자체 채용 사이트에 게시 중이던 엔터테인먼트 업계 공고 3,488건(같은 회사·같은 공고명은 1건으로 합침). '기획 계열'은 직무명·공고명에 기획·콘텐츠·공연·행사·A&R·팬 등이 들어간 공고. 키워드 비율은 공고 문장에서 낱말을 찾은 어림값이다.